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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여행기-11.이탈리아 문화의 중심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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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태수 작성일18-02-09 09:00 조회2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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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이름은 플로렌스(Florence)인 피렌체의 꽃들의 마을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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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북서쪽으로 약 230㎞ 떨어져 있는 이 시는 공화국, 토스카나 공작령의 수도, 이탈리아의 수도(1865~71) 등 다양한 지위를 누리며 긴 역사를 이어왔다.
BC 1세기경 로마의 군사 식민지에서 비롯된 곳으로 14~16세기에는 예술을 비롯하여 상업·금융·학문 등의 분야에서 높은 위치를 점했다.
이곳을 무대로 활발히 활동했던 천재들을 통해 이 시의 탁월함을 엿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브루넬레스키, 단테, 마키아벨리, 갈릴레오 및 메디치 가문을 들 수 있다. (백과사전 )


시에나를 들렀다가 피사를 들렀다가 피렌체에서 낮에 도착해서 구경하고 일박하기로 했던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그것은 너무도 피곤한 나머지 시에나에서 피렌체로 오는 바람에 깜박 졸아버린것..
졸다가 깜짝놀라 내린곳은 전혀 엉뚱한 곳.. 알아보니 한 열정거장은 덜 왔다.
다음기차는 2시간후에나 있단다. 아놔.... 이 아까운 2시간을 우얄꼬...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피렌체는 도착하자 마자 웅장한 고딕 양식들로 압도 한다.

업무차 왔던지라 노트북용 가방으로는 돌아다니기가 너무도 불편하여
길거리에서 작은 배낭을 하나 샀다 중국산이고 오백유로, 그당시 물가로 만원 정도 될듯 하다.
근데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이놈이 정말 물건이다.

그러지 않아도 날씨가 흐려서 시에나 피사를 돌때 왕창 짜증이 났는데
이젠 비까지 내릴 모양이다. 아니 거의 쏟아질 기세이다.
급하게 발걸음을 돌려 아까 배낭파는 곳에서 우산을 하나 샀다....
중국산이다...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이넘은 더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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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폇다.. 날이 하나가 날라가 버렸다.
돌아가서 교환하기에는 잰걸음으로 온터라 너무 멀리 왔고..
살하나 부서진채로 피렌체 거리를 활보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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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길을 걸으니 피렌체 대성당이 뜨억 하고 나타난다.
피렌체 대성당의 돔은 벽돌로 지어진 것으로는 세계 최대의 것이라고 한다.
브루넬레스키라는 유명한 건축가가 1420년 시작하여 1436년에 돔이 완성되었다. 목재 지지구조 없이 지었다는 것이 믿기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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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곳은 지오토의 종탑이다.
올라가서 보고 싶지만, 돌아다닐곳이 너무 멀고 게다가 아직 숙소조차 정하지 못했다.

먼저 가까운 시뇨리아 광장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그리스 신화는 엄격히 금지되었던 중세에 피렌체만은 그리스의 신들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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쟘볼로냐(Giambologna)의 " 헤라클레스와 싸우는 켄타우로스 네쏘"(1599) 작품이다.


켄타우로스는 그리스 중동부 지역인 테살리아의 왕 익시온의 후예들이라고 한다.
신화에 따르면, 어느 날 올림포스 산으로 가서 신들의 잔치에 동석한 익시온은 그 곳에서 헤라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되었는데,
이를 눈치 챈 제우스가 익시온을 속여 그에게 헤라의 모습을 본떠서 만든 구름을 가져다 주었다.
익시온은 구름을 헤라로 착각하고 몸을 섞었는데 그 사이에서 태어난 게 바로 켄타우로스이다.

켄타우로스는 대초원에 무리를 지어 사는데, 대부분 성질이 난폭하고 음탕하다.
55살까지 살 수 있으나 대부분 40살이 되면 죽는 이유는 피살되거나 전사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난폭하다는 의미이다.
또한 술을 너무 좋아하여 종종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기도 한다. 그래서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추종자 대열에 합류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켄타우로스가 저지른 비행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테살리아 왕의 결혼식을 난장판으로 만든 이야기이다.
사람들과 곧잘 사귀었던 켄타우로스들은 결혼식에 하객으로 초청받았었는데,
잔치가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몇몇이 술에 만취해 신부에게 모욕을 주고 행패를 부렸다.
이를 빌미로 인간과 켄타우로스 간에 혈투가 벌어졌다. 결국 싸움에서 진 켄타우로스들은 테살리아를 떠났으며,
남아있던 자들은 훗날 헤라클레스에 의해 대부분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모든 켄타우로스가 난폭하지는 않다. 케이론이라는 켄타우로스는 의술, 음악, 수렵, 예언에 능통하였으며, 결코 죽지 않는 운명을 타고났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케이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영웅들을 자신의 제자로 두었다.
케이론은 의술이 뛰어나 죽은 사람도 소생시켰기 때문에 저승의 신 하데스로부터 원망을 들었다.
그 결과 케이론은 하데스의 청탁을 받은 제우스의 독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제우스는 불사의 케이론이 영원히 상처의 고통을 받는 것에 연민을 느껴 그를 황도 12궁의 궁수자리, 즉 켄타우로스자리로 만들었다.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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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안고있는 메넬라오스
메넬라오스(그리스어: Μενελαος)는 그리스 신화의 한 인물로, 아트레우스와 아이로페 사이에 태어난 스파르타의 왕이었다.

헬레네가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하자 그리스 전역에서 많은 구혼자가 몰려왔다. 이 중에는 오디세우스와 파트로클로스, 그리고 메넬라오스의 형 아가멤논이 있었다.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우스는 이들 중 하나를 사위로 뽑으면 남겨진 구혼자들이 다툴까봐 사위를 뽑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자 오디세우스가 틴다레우스가 고른 사위가 싸움에 말려들면 구혼자들은 모두 그의 편을 들겠다고 미리 맹세를 하도록 꾀를 냈다.
구혼자들이 맹세를 마치자 틴다레우스는 메넬라오스를 택했다

틴다레우스가 죽고 왕자인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도 일찍 죽자 헬레나의 남편 메넬라오스가 스파르타의 왕좌에 올랐다. 헬레네는 메넬라오스와의 사이에서 딸 헤르미오네를 낳았다.

헬레네는 파리스와 사랑에 빠졌다고도 하고, 다른 설에 따르면 파리스를 사랑하지 않았으나 억지로 납치되었다고도 한다.

메넬라오스는 헬레네의 구혼자들에게 맹세를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메넬라오스의 형 아가멤논을 중심으로 거대한 그리스군이 결성되고, 이에 대항해 트로이아에도 동맹군이 모였다. 이것이 트로이 전쟁이다.

전쟁이 그리스군의 승리로 끝난 후, 메넬라오스는 헬레네를 죽일 계획이었으나 그녀의 아름다움에 재차 감동해 결국 함께 스파르타로 돌아왔다.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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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페디의 아킬레스와 트로이공주 포르세나
미르미돈족의 왕인 펠레우스와 바다의 님프(네레이스)인 테티스의 아들. 트로이 전쟁 때 아가멤논의 군대에서 가장 잘생기고 가장 용감하며 뛰어난 전사였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테티스는 프티아에서 아킬레우스를 그의 사촌이며 절친한 친구인 파트로클로스와 함께 길렀다고 한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그가 어릴 때 테티스가 스틱스 강물에 그를 담가서 불사신(不死身)으로 만들었지만
그녀가 잡고 있었던 발꿈치만은 물에 젖지 않아서 그의 약점이 되었다고 하며, 거기에서 '아킬레스건(腱)'이라는 말이 생겼다.

훗날의 신화작가들 이야기에 따르면, 펠레우스는 아들이 트로이 전쟁에서 전사하리라는 신탁(神託)을 받고는 아킬레우스를 스키로스에 있는
리코메데스의 궁궐로 보내 여자 옷을 입히고 공주들과 같이 키웠다고 한다(그 딸들 중 하나인 데이다미아는 그에게 네오프톨레모스를 낳아주었음).
그러나 점성가 칼카스가 아킬레우스 없이는 트로이를 함락시킬 수 없다고 경고했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그를 찾아다녔고 결국은 찾아내었다.

트로이 전쟁의 처음 9년 동안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주변 지역을 휩쓸면서 12개의 도시를 점령했다.
10년째 되던 해에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가 다투는 일이 생겼는데, 이는 아가멤논의 전리품이었던 크리세이스의 아버지가 아폴론 신의 제사장이었으므로
아폴론의 분노로 인해 군사들이 전염병으로 죽어가게 되자 아킬레우스가 그녀를 아버지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화가 난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가 가장 아끼는 노예 브리세이스를 빼앗아 자신의 손해를 보충했다.
이때문에 아킬레우스는 더이상 전쟁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리스군이 너무나 패배를 거듭하고 있었기 때문에
파트로클로스에게 마차와 갑옷을 빌려주어 자기로 가장하게 했다.
그러나 헥토르(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장남)가 파트로클로스를 죽이자,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과 화해를 하고
헤파이스토스 신에게서 새로운 갑옷을 얻어가지고 싸움에 나가 헥토르를 죽였다.
시인 아르크티노스는 〈아이티오피스 Aethiopis〉에서 〈일리아스 Iliad〉의 이야기를 다루어,
에티오피아 왕 멤논과 아마존족 펜테실레아를 죽인 아킬레우스는 아폴론에게 화살을 얻은 파리스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노래했다.
아킬레우스는 레우케·스파르타·엘리스, 특히 헬레스폰트에 있는 시게움에서 숭배되었다.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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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의 목을 벤 페르세우스의 청동상인 "첼리니의 페르세우스"
고르곤 중 하나인 메두사를 죽였으며, 바다 괴물로부터 안드로메다를 구출했다.
아르고스의 아크리시오스의 딸인 다나에와 제우스 사이의 아들이었다. 아크리시오스는 손자가 자기를 죽이게 되리라는 예언 때문에
갓 태어난 페르세우스와 다나에를 큰 궤짝에 넣어 바다로 던져버렸는데, 궤짝은 세리포스라는 섬에 닿았고 페르세우스는 그곳에서 자라게 되었다.

다나에를 아내로 맞고 싶어하던 세리포스의 왕 폴리덱테스는 흉계를 꾸며 페르세우스에게 고르곤들 중에 유일하게 죽일 수 있는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페르세우스는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고르곤들을 지키는 자매인 그라이아들을 위협해 그를 돕게 한다.
즉 세 자매가 함께 쓰고 있는 눈 하나와 이빨 하나를 빼앗은 다음,
마음대로 날 수 있는 날개 달린 신발과 몸을 안 보이게 하는 하데스의 투구,
메두사의 목을 치는 데 쓸 휘어진 칼(또는 낫)과 잘린 머리를 담을 자루를 얻고 나서야 그들에게 눈과 이빨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다른 설에 따르면 그라이아 자매는 그를 저승의 님프들에게 안내한 일만 했고,
님프들이 페르세우스에게 고르곤들이 사는 곳을 알려주고 자루·신발·투구를 주었으며, 그에게 칼을 준 사람은 헤르메스라고 한다.
메두사의 눈을 보면 누구나 돌로 변해버리기 때문에 페르세우스는 아테나가 준 방패에 비친 모습을 보면서 메두사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그 목을 베었다.
세리포스로 돌아온 페르세우스는 폴리덱테스와 그 부하들에게 메두사의 머리를 쳐들어 돌로 만들어버리고 어머니를 구했다.

페르세우스가 한 또다른 일은 메두사의 머리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에티오피아의 공주인 안드로메다를 구한 것이다.
안드로메다의 어머니인 카시오페이아는 바다의 님프인 네레이스들보다 자기가 더 예쁘다고 뽐냈다.
그래서 포세이돈은 그 벌로 에티오피아에 홍수를 일으키고 전염병이 돌게 했을 뿐만 아니라 바다 괴물도 보냈다.
안드로메다의 아버지인 케페우스 왕은 바다 괴물에게 딸을 바치면 에티오피아가 질병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그대로 했다.
지나가던 페르세우스는 이 아름다운 공주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는 메두사의 머리를 이용해 바다 괴물을 돌로 만들어버리고 안드로메다와 결혼했다.

뒤에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아테나에게 바치고 다른 장비들은 헤르메스에게 바쳤다.
아테나는 그 머리를 자기 방패에 달고 다녔다.
어머니인 다나에와 함께 고향인 아르고스로 돌아온 페르세우스는 원반 던지기 경기에 참가해 원반을 던지게 되었는데
그 원반이 우연히 아크리시오스에게 맞아 그만 죽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그가 할아버지를 죽이게 될 것이라는 옛 예언은 적중했다.
페르세우스는 결국 아르고스를 떠나 미케네를 건설해서 거처로 삼고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여러 명의 후손을 남겼다.
페르세우스의 이야기는 고대 및 르네상스 시대에 걸쳐 회화와 조각에서 널리 쓰이던 주제였다.
고르곤의 머리를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거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재해석했으며,
영국의 소설가인 아이리스 머독은 〈잘린 머리 A Severed Head〉에서 현대적인 상징으로 사용했다.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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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안고있는 메넬라오스
메넬라오스(그리스어: Μενελαος)는 그리스 신화의 한 인물로, 아트레우스와 아이로페 사이에 태어난 스파르타의 왕이었다.

헬레네가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하자 그리스 전역에서 많은 구혼자가 몰려왔다. 이 중에는 오디세우스와 파트로클로스,
그리고 메넬라오스의 형 아가멤논이 있었다.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우스는 이들 중 하나를 사위로 뽑으면 남겨진 구혼자들이 다툴까봐 사위를 뽑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자 오디세우스가 틴다레우스가 고른 사위가 싸움에 말려들면 구혼자들은 모두 그의 편을 들겠다고 미리 맹세를 하도록 꾀를 냈다.
구혼자들이 맹세를 마치자 틴다레우스는 메넬라오스를 택했다.

틴다레우스가 죽고 왕자인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도 일찍 죽자 헬레나의 남편 메넬라오스가 스파르타의 왕좌에 올랐다.
헬레네는 메넬라오스와의 사이에서 딸 헤르미오네를 낳았다.

헬레네는 파리스와 사랑에 빠졌다고도 하고, 다른 설에 따르면 파리스를 사랑하지 않았으나 억지로 납치되었다고도 한다.

메넬라오스는 헬레네의 구혼자들에게 맹세를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메넬라오스의 형 아가멤논을 중심으로 거대한 그리스군이 결성되고,
이에 대항해 트로이아에도 동맹군이 모였다. 이것이 트로이 전쟁이다.

전쟁이 그리스군의 승리로 끝난 후, 메넬라오스는 헬레네를 죽일 계획이었으나 그녀의 아름다움에 재차 감동해 결국 함께 스파르타로 돌아왔다.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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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모(Cosimo)1세의 청동 기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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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신(Neptune)조각이 있는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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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은 공사중이라 관람할수 없었다 비록 짝퉁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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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블로냐의 "사비니 여인의 겁탈"
로마는 여자가 부족해 주위의 사비니 지방에서 여자들을 강탈해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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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무작정 지도가 보이는 미켈란젤로 언덕을 가보기로 한다.
그런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차라리 숙소부터 정하고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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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피시방을 찾았다.
억수같이 내린 비로 인해 가방도 옷도 모두다 젖고 말았다.
한글키보다 없지만 다음카페에 들어가서 영문으로 피렌체, 민박을 치니 몇군데가 나온다.

일단, 전화로 대성당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다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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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민박을 운영하는 사람은 키가작은 조선족이다.
두명의 한국인이 있었는데 한명은 다이아몬드 사업을 하는 사람이고 한명은 통역가이드 이다.
그날 우리 세명은 거의 플라스틱 병에 들은 소주 20개 이상은 비운것 같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김치와 소고기국은 정말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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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토리에는 나 말고도 사업가 한명, 그리고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두명이 있었는데
뒷날 들은 이야기로는 내 코고는 소리에 한숨도 못잣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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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얻어먹은게 너무 미안해서 다시 한번 피렌체로 오기로 햇지만
이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다른 들럴곳이 너무 많았기에.... 정말 미안함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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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뒷 골목.... 비가 너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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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는 지라 비를 맞고서도 피렌체를 둘러보기로 한다.
오늘 아니면 언제 다시 올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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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너무 와서 큰 카메라는 꺼낼 엄두도 못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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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크로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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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크로체 성당앞의 단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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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에서는 너무 늦게 일어났다고 아침밥도 주지 않았다.
거의 잠도 못자고 못먹고 이틀을 걸어서 돌아다닌데다가 어제는 과음으로 인해 속도 쓰리고 배가 너무 고프다.
시원한 해장국 한그릇이면 좋겠지만, 여긴 그런 곳이 없다.
빵하나에 우유를 세개나 시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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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언덕을 향해 가는 길에 보이는 아르노 강가..
비록 날씨는 맑지 못하지만 그런 데로 운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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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뎌 도착한 미켈란젤로 광장의 다비드 상
그 유명한 다비드 짜가 중에 한개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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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상앞에 있는 매점에 파는 바지가 익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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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 도착하며 샀던 짜가 배낭을 열어보았다.
이 배낭은 들어오는 물기는 모두 걷어들이면서 밑으로의 방수는 철저하다.
그래서 배낭안에 엄청난 물이 고여 있다. 세수를 해도 될 정도로.... ㅠ.ㅠ
가방안의 카메라가 기절을 해있다. 가져간 수건으로 닦고 응급조치를 해보았지만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놔 미쳐 가방 왜이래... 그래 역시 중국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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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언덕 너머로 그 유명한 1569년 토스카나 대공국(大公國) 성립. 피렌체의 메디치가(家)가 대공의 저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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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 강가를 따라 걸으니 벡키오의 다리가 보인다.
유럽 중세 공학의 뛰어난 업적이며 타데오 가디가 1345년에 완성했다.
다리의 도로에는 2층의 갤러리가 있는데,
위층의 갤러리는 근처에 있는 피티 궁, 우피치 궁 및 다른 궁전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아래층 갤러리는 상가가 들어서도록 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 독일군이 철수하면서 아르노 강에서 유일하게 파괴하지 않고 남긴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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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시들지 않는 아르노 강변의 꽃
“베르길리우스는 인간의 이성을 상징하고....
베아트리와 단테의 관계는 이성을 상징하고...
베아트리체와 단테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와 인류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뭐? 나를 안내하겠다고? 그럴 필요 없어. 이 지역은 내 손바닥 들여다보듯 뻔히 알아.
내가 살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군. 이건 두오모이고.... 흠, 그때보다 겉모습이 화려해졌군...
그런데 웬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담? 가만 있자,
내가 이러고 있을 떄가 아니라 먼저 폰데 벡키오로 가봐야겠어.”
노인은 피렌체의 유서깊은 다리 폰테 벡키오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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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테 벡키오의 모습이 아르노 강위에 비친다.
다리 위에 선 노인은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다가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회상에 잠긴다.
그의 눈은 초점이 흐려지고…

, 한 소년의 모습이 추억 속에 아련히 떠오른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오, 나의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여!”


만약 단테(Dante Alighieri:1265~1321)가 다시 살아난다면...
이처럼 폰테 벡키오로 달려가 베아트리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지도 모르겠다.
단테는 베아트리체가 아홉 살 때 이 다리에서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 어린 베아트리체가 단테의 마음을 평생 사로잡고 말았다.
단테는 베아트리체가 열여덟살이 되었을 때 다시 만나게 되지만,
그 후 그녀는 귀족 집안인 바르디 가문에 시집 갔다가 1290년 6월, 2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단테 또한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자식도 두고 있었지만 베아트리체를 평생토록 잊지 못했다. http://blog.daum.net/ilgun001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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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 미술관..
피렌체에 온 이유가 우피치 미술관을 보기 위함인데..
엄격한 입장수 제한으로 인해 2시간이나 기다리다가 포기하고야 만다. 아 억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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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일박 이일의 피렌체 여행이 끝나고 만다.
반드시 한번 더오고 말겠다는 내 다짐은 끝내 지켜지지 못하고 이태리를 떠나고 만다.


비도 오고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때문에 (사실 지도가 엉망이었슴)
야경도 찍지 못하고, 제대로 구경도 못해봤다.

무엇보다 가장 아쉬운 것은 우피치 미술관을 가보지 못한 점이다.
보고 싶은게 너무 많았는데...

다음에 꼭 한번 더 와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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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넘의 염장들은 어데서나 눈에 띄는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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